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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세상

미주 최초 한국인 대법원장 문대양

"우리 모두는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야 합니다.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크든 작든 힘을 합해야 해요."

학습 목표

문대양(Ronald Moon) 전 하와이 주 대법원장이 120여 년 전 한국에서 하와이로 이민 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문 전 대법원장의 이야기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과 사회적 책임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요약

“부모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대양 전 대법원장의 말입니다. 1903년, 빈털털이로 하와이에 왔던 사탕수수 노동자는 어떻게 손자를 미주 최초의 한인 대법원장으로 키웠을까요? 그의 할아버지는 다른 1세대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진 것이 없었지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 인터뷰는 문대양 전 대법원장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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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양(Ronald Moon)은 누구인가

문대양은 미국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대법원장입니다. 1990년, 49세의 나이에 하와이 대법관으로 임명되었고, 3년 후 대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정년퇴임할 때까지 하와이 사법부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하와이 주정부는 2010년 신축된 지방법원 청사를 ‘로널드 문 법원’이라 명명했습니다.

문대양은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법원 접근성을 높이고 법률 서비스 봉사를 장려했습니다. 특히 민사 소송에서 변호인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법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하와이의 군부대 지역인 와히아와에서 자랐으며, 그의 할아버지 문정헌은 초기 한인 이민 1세대로 사탕수수 노동 계약 후 와히아와에 작은 양복점을 열고 정착했습니다.

역사적 배경

1. 1920년대 와히아와는 어땠습니까?

​​

1920년대 와히아와는 수백명의 한국인이 모여살던 이른바 "한인타운"이었습니다. 당시 태평양 연안에서 가장 큰 군부대가 와히아와에 있어서, 한인들은 군인을 상대로 세탁소나 수선점 같은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와히아와는 미국에서 가장 초기 한인 공동체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2. 하와이 농장주들이 한인 이민자들을 노동자로 모집하기 위해 내건 광고는 그들이 높은 임금(4인 가족의 약 3개월 치 쌀값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고 무료 교육, 의료, 주거 제공과 같은 유리한 조건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사실이었을까요?

 

최초의 한인 이민자들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와이로 떠났지만, 현실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현실은 광고문구와 매우 달랐습니다.​​

노동자들은 사탕수수를 자르기 위해 길고 무거운 칼날을 사용했기에 그들의 손은 항상 물집으로 뒤덮여있었습니다. 그들은 날카로운 사탕수수 잎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운 날씨에도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한인 이민자들은 한국 음식이 그리워 김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농장주들이 김치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 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김치를 먹는 것이 발각되었을 때 처벌을 받았습니다.

3.  문대양 전 대법원장의 두 할아버지는 모두 하와이의 1세대 한인 이민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먼 타국 하와이로 떠나야 했을까요?

당시 조선(한국)은 큰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먼저,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은 조선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중국과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려고 싸운 것이었고, 전투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벌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큰 피해를 입었고,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정치와 경제는 점점 어려워졌고, 국민들의 삶도 불안정해졌습니다.

같은 시기 동학농민운동이라는 큰 민중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은 부정부패, 외세 간섭, 불공정한 세금에 반발하며 들고일어났고, 조선 정부의 힘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이 틈을 타 일본과 중국이 다시 조선에 개입하면서 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처럼 전쟁과 내란, 외세 간섭으로 삶이 불안해지자 많은 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찾아 하와이로 떠났습니다. 문대양 대법원장의 두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토론 주제

  • 종교와 교회 공동체는 한인 이민자들의 삶과 한국의 독립에 어떤 역할을 했나요?

  •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항상 자신의 양복점 문을 열어둔 문대양 전 대법원장의 아버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 여러분이라면 고국에 가본 적이 없더라도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고 교감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문대양은 어떻게 한국와 교감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 문대양 전 대법원장의 아버지는 '봉사는 사회 구성원 누구나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사는 대가로 누구나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라고 했는데요. 이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 ‘법을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한다‘는 원칙이 법제도의 공정성과 실효성에 어떤 기여를 하며,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까요?

관련 영화 및 도서 추천

도서

아리랑 (1994)

저자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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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대하 소설 ‘아리랑’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한국 이민자들의 삶과 고난을 중요한 배경으로 다룬다. 특히, 일제 강점기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하와이로 이민을 가거나 강제 노동에 끌려갔던 상황을 생생하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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